다수의 독재에 저항하는 수학자들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법과 정치의 영역에 수학이 끼어들 수 있을까? 1993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빌 클린턴은 법무부의 시민권 담당 책임자에 라니 귀니에르라는 한 흑인 여성 법학자를 지명하지만, 발표 즉시 “급진주의자”, “광적인 여자” 등의 인신 공격성 비난까지 퍼붓는 보수 진영의 격렬한 여론몰이식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그녀의 예일대 법대 동창생이며 오랜 친구였던 클린턴도 어쩔 수 없이 지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보수 세력은 귀니에르의 어떤 주장과 행동에 극심한 적대감을 보였던 것일까?
인종이나 성차별 등에 관한 개혁적인 입장은 물론 스스로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로 자처한 귀니에르는 ‘다수에 의한 통치’가 실제로는 공정하지도 않으며 결코 민주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다수의 독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다수의 독재’는 훗날 자신이 저술한 책의 제목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녀만 이 용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존경받는 제임스 메디슨도 51퍼센트가 강요하는 ‘다수의 독재’는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저항했던 왕정 독재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했으니 ‘다수의 독재’를 비판한 귀니에르의 주장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소수 집단의 힘이 커지면 자신들의 삶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 겁을 먹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녀를 급진주의자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녀를 옹호하고 나선 전문가 집단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수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비판자들이야말로 스스로 수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내 보이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반박하며 그녀의 편에 섰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치 세계에서 별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 수학자들이 왜 정치적으로 무모한 발언을 했던 것일까?
이보다 20년 앞선 1972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케네스 애로를 지명하는데, ‘합리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완벽하게 공정한 민주적 투표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위 애로의 정리가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이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A, B, C 세 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한 가상의 투표 결과를 생각해보자.
50명이 투표한 결과 A후보는 18표를 얻었으니 ‘다수결 원칙’에 따라 대표로 선출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B후보의 득표 상황에 주목해보자. 비록 1위 득표수는 A후보에 1표 뒤진 17표이지만, 나머지 33명은 계속해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보내는 반면, A후보는 18명의 지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32명으로부터 가장 낮은 선호도를 얻었다는 결과를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A후보를 대표로 선출하는 것이 모든 투표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1위 득표도 17표를 확보하고 2위의 선호도에서도 모두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B후보를 무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결과이다.
노벨상 수상자 애로는 이러한 가상적 상황으로부터 자신의 연구가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몇몇 구체적인 사례에서 출발했죠. 나는 이미 여기에 문제점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문제점들을 무효화하고 배제하게 하는 조건들을 정리 기술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구체적인 사례를 구성하였죠. 즉 수학적 공리화라는 시도를 감행했던 것입니다.”
경제학자였던 애로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집대성할 때 적용했던 공리적 방식에 따라 공정한 선거제도에 필요한 준거들을 일일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앞의 예와 같은 가상의 투표 결과는 그러한 추론 과정에 나타날 수 있는 다수결 원칙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수학자들이 비록 그 결과는 무위로 끝났지만 거대한 보수 진영에 맞서 귀니에르를 옹호하고 나설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다수결 방식을 적용하는 투표제도가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기에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는 이도 별로 없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라 여기며 지나치게 선호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 나아가 다수결 원칙의 공정성에 대한 신념이 지나쳐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오만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빈번하게 목격할 수가 있다. 그러니 다수결 방식이 최악의 제도일 수 있으며 따라서 언제든 다수의 독재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애로의 정리까지 들춰낼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현상이 수학을 압도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애로의 정리는 유효하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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