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안하면 대학 못 간대요"… 불안감 먹고 크는 수학시장
[벼랑끝에 선 수학교육] (3회) 고삐 풀린 수학 사교육
2월 중·고교 수학 사교육 시장에는 호재가 잇따랐다. 교육부가 영어 사교육 부담 경감 대책으로 ‘쉬운 수능 영어’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공교육의 선행학습을 규제하는 이른바 ‘선행교육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당장 중등수학 학원가 안팎에서는 “수능 영어가 쉬어지면 수학에서 입시 당락이 갈릴 것”, “선행학습 수요가 사교육 시장으로 더욱 몰릴 것”이라는 등의 전망이 쏟아졌다. 앞서 지난해 초등 1, 2학년부터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이 유아·초등 수학 사교육 시장의 ‘블루칩’으로 작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꼼꼼하지 못한 사교육 대책과 교육과정 변화 등이 학생과 학부모의 ‘수학 불안감’을 더 키우면서 사교육 업계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다. 수학에 대한 사교육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수학은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주도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인 김모(40·여)씨는 딸(9)을 지난해 입학하기 전부터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냈다. 자녀가 새로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에 잘 적응하고, 나중에 영재교육원과 과학고에 가려면 미리 그런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주변 분위기도 크게 작용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수학 학원비만 월 30만원 정도다.
김씨는 “스토리텔링 수학이 워낙 생소해 가르칠 능력도 안 되고, 수학도 이제는 독해력이 안 되면 고학년에 올라가서 더 어려워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찌감치 학원에 보냈다”고 말했다.
초등 5학년 때부터 수학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모(15·중2)군은 현재 고1 수학을 배우고 있다. 자연계열 대학에 가려면 중학교 때 고교 ‘이과 수학’을 어느 정도 해둬야 한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다. 이군은 “고3 이과생인 사촌형도 중3∼고1 때 혼자 수학 공부를 하다 도저히 안 돼 지금은 월 60만원짜리 그룹과외를 받는다”며 “이과에 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억지로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고 불만 섞인 소리로 말했다.
영어와 함께 수학이 사교육 시장의 ‘절대 강자’인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지난해 기준으로 공식집계된 수학 사교육비 규모는 5조7762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적게는 월 50만원에서 많게는 월 수백만원 하는 음성화된 개인·그룹과외 등을 포함하면 전체 수학 사교육비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그만큼 수학에 대한 사교육 의존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수학교육 현안 조사연구’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2011년 말 완성된 이 보고서는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 수학교육 실태를 심층적으로 조사한 가장 최근 자료다.
8일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주로 선행학습과 다양한 문제풀이, 학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용으로 수학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중·고생 2543명과 학부모 21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특히 과외와 학원 유형별 참여 현황을 보면 초·중·고생 모두 ‘선행학습 위주의 학원’(초 41.8%·중 38.7%·고 28.2%)에 다니는 비율이 가장 높았고, ‘학교 진도에 맞춰 수업 내용을 반복해주는 학원’(초 33.1%·중 35.7%·고 24.6%)이 뒤를 이었다. 반면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력 향상 위주 학원’(초 26.2%·중 10.8%·고 5.1%)에 다니는 비율은 저조했다.
수학 사교육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생의 경우 ‘저학년’(58.2%) 때가 가장 많았고, 중고생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가 각각 42.5%와 33.8%로 가장 많았다. 수학 사교육을 일찍 시작하는 데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고교 수학교사 출신의 안상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부소장은 “수학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원하는 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데다 수학교육 환경이 선행학습을 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까지 그렇게 하도록 떠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배치고사와 중간·기말고사 등 학교 내 각종 평가와 일부 대학 수준의 교육과정, 수학시험 범위가 방대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대학별 논술 등에 대비하려면 학교 교육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실제 보고서에도 수학 사교육 참여 이유를 묻는 질문에 초·중·고생과 학부모 모두 “수학 내신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와 “수학 사교육 수업에서는 학교 시험에 대비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어서”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는 수학 사교육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져 응답자 10명 중 7∼8명이 ‘수학 사교육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수학교육에 관한 한 공교육은 뒷전이고, 사교육이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 여명중학교 김영화 수학교사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촉진하면서 가르쳐 보려고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학생들은 ‘학원에서 진작에 다 배웠다’고 한다”며 “내가 가장 먼저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미 답을 알고 있는 학생들 앞에 서면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안 부소장은 사교육 의존도 완화 방안과 관련해 “수학은 좀 쉬워도 변별력이 충분한 과목이므로 공교육에서 수학과목의 학습 양과 수준을 좀 낮춰야 한다”며 “사교육 시장은 심화학습(우수학생)과 보충학습(부진학생)에 집중하게 하고, 과도한 선행학습과 수강료는 철저히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출처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4/08/20140408005308.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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