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식 수학 교육
내비게이션식 수학 교육 - 박영훈
“일찍이 수학자가 되려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학 교과서 뒤에 실린 해답을 맹목적으로 믿고 이를 열심히 반복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답은 모두 정답이었는데 말이지요.”
인도 태생의 가톨릭 신부인 앤서니 드 멜로의 <일 분 지혜>에 나오는 이야기다. 만일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며 ‘그렇지!’ 하고 동의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아도 틀림없다. 당신도 수학 공부란 그저 문제의 해답을 익히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반인들은 수학이란 문제를 푸는 학문이니, 수학 학습은 문제의 답을 익히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곧 문제를 풀어주는 것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 선생님은 음악 시간 내내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준다는 말인가? 미술 선생님은 직접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문학을 가르친다고 국어 선생님이 소설을 창작하거나 시를 짓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수학 선생님은 수학 시간 내내 문제를 풀어주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고, 대부분의 학교 수업에서도 실제 그러하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딱한 것은 선생님이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고 학생들이 그대로 따라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문제를 풀어줄 때는 그 풀이 과정이 잘 이해가 되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그 문제를 접하면 처음처럼 백지 상태가 되고 마는 경험을 무수히 많이 겪었으리라. 당신이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수학책의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손때가 묻어 있었는지 기억해보라. 아마도 해답이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해답을 보고 풀었건만 나중에 보니 또 모르기 때문에 다시 들춰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문제를 접할 때마다 해답집을 찾아야 하는 이 안타까움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며, 그동안 했던 공부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요즘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길을 찾으니 굳이 지도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시청에서 경포대 해수욕장을 찾아간다고 하자. 초행길이라 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리고 틀림없이 경포 바닷가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운전해 온 길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서만 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비게이션 없이 전에 가보았던 길을 다시 가라고 하면 시쳇말로 ‘대략난감’일 수밖에.
수학 문제 풀이는 길 찾기와 같다. 주어진 문제를 출발 지점이라 하면 그 문제의 정답은 도착 지점이니, 수학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은 출발지에서 도착지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풀이해 놓은 방법을 그대로 따라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결국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도착지에 이르는 길을 하나하나 선택해서 찾아나가는 과정을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것과 똑같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문제를 풀어주는 우리의 수학 수업은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길을 찾아가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훈련이지 교육이 아니다.
미국 유학 시절, 조교로서 대학 신입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의 이야기다. 대학원 과정 중이었기에 시간이 빠듯했던 터라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도 줄여볼까 싶어 해답이 들어 있는 교사용 지도서를 출판사에 주문했다. 그랬더니 정작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은 지도서가 아니라 ‘당신이 이 책으로 수업을 하는 교사라는 증명서를 보내시오’라는 답신이었다. 요컨대 학생들에게는 해답집을 건네주지 않겠다는 것이 출판사의 방침이라는 얘기였다.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해답집뿐만 아니라 소위 ‘족보’라는 예상 문제까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 나아가 교육이란 무엇이냐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들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오늘도 교육방송 채널에는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는 소위 ‘스타’ 강사들이 출연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일필휘지로 풀이 과정을 적어가며 자신만의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양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띠기도 한다. 그 장면 위로 아무 생각 없이 이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을 수많은 학생들이 오버랩되면서 앤서니 드 멜로가 언급한 학생이 떠오른다. 내비게이션식 수학, 이는 결코 수학이 아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