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과학 오디세이]한국 아이들이 수학을 잘한다고?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우리 아이들이 공부 하나는 참 잘하지. 특히 수학 실력은 세계 최고야.”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근거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SS)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학 학업성취도는 세계 1~2위로 최상위권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수학 2위, 과학 1위,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수학 1위, 과학 3위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국제적인 검증으로 객관화된 이 수치가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말해주는 자료로 인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때로는 결과에 들뜬 나머지 원래부터 우리가 우수한 민족이라 아이들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식으로 부풀려 한국 교육의 신화 만들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믿음은 한결같다.
과연 그럴까? 정말 우리 아이들의 수학 실력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PISA나 TIMSS의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으레 논의되는 학력과 행복감 사이의 불균형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점수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점수와 학력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토플과 토익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유학 준비생이라면 상당한 영어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현지에 가서는 영어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니 어찌된 일일까? 영어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영어 시험 준비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력도 안되면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 가능하다. 시험에 나올 문제들만 모아서 집중적으로 훈련(교육이 아닌)을 거듭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초·중등학교 수준의 수학은 양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출제 예상 문제를 집대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학습참고서 출판사들은 이를 유형별로 정리하여 소위 ‘족보’라는 것을 만들어 제공한다. 이 족보만 달달 외우면 시험을 치를 때 굳이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고도 대충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국제비교연구 시험은 단순 암기식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를 측정하는 참신한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사교육은 아이들의 훈련에 적합하게 이를 족보화할 수 있는 뛰어난 인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한다)이라는 희귀한 말이 공부의 비결인 양 유행할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결국 아이들에게는 고도의 시험 감각을 익히는 것을 공부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 또한 이를 교육이라 오해하게 된 것이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고 수학 개념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학력을 측정하는 것이 평가의 원래 목적인데, 우리에게는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 나타난다. 평가 문제만을 통째로 외워 지름길로 가는 것을 공부라 여기고, 영어로 의사소통은 할 수 없어도 토플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전수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육의 실상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도서관이 아닌 독서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풀어놓은 해답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 이를 공부라 착각하면서 12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높은 수학 점수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외국인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발언해온 오바마가 조만간 방한한다고 한다. 만일 그가 딱 하루만이라도 한국의 한 학생과 함께 지내본다면 어떨까. 그러고 나서도 계속해서 한국 교육의 전도사가 될 수 있을까.
“일찍이 수학자가 되겠다는 한 학생이 있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죠. 왜냐하면 수학 교과서 뒤에 실린 답을 맹목적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답은 모두 정답이지만요.”
가톨릭 신부 앤소니 드 멜로의 <일분 지혜>라는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화려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더라도 수학을 잘한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고약한 냉소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시험에 대비해서 정답만 익히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