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선 수학교육] (2회) '수학 공포증' 왜?
학생들 ‘근의 공식’만 1만번 풀어… ‘문제 푸는 기계’ 전락
[벼랑끝에 선 수학교육] (2회) '수학 공포증' 왜?
우리나라 중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푸는 ‘근의 공식’ 관련 문제는 몇 개나 될까.
7일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의 말에 따르면 중·상위권 학생이 중·고교 6년 동안 푸는 문제집은 30∼60권. 근의 공식을 이용하는 2차 방정식 문제가 문제집 한 권당 30∼100개씩 실려 있으니 최고 3000∼6000문제라는 계산이 나온다.
수학칼럼니스트인 박영훈 나온교육연구소 이사장은 “각종 학습지까지 포함하면 근의 공식을 대입해 푸는 문제만 1만 개쯤은 될 것”이라며 “수학의 본질이 아닌 단순한 문제 풀이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수학이 학생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든 것이다.
◆경쟁의 도구가 된 수학
수학 교육이 본질보다는 ‘곁가지’에 비중을 두는 원인은 우리나라 교육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 학업 경쟁의 꼭대기에는 대입이 있다. 중학교는 고입을 위해, 고등학교는 대입을 위해 학생을 줄 세워 순위를 매긴다.
변별력 확보의 도구가 된 수학은 중간·기말고사 같은 학교 시험에서 수많은 학생을 낙오자로 만든다. 수원 A고교 김은경(여·가명) 교사는 “시험 문제를 낼 때 가장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수업시간에 하위권 학생을 어르고 달래 힘겹게 공부를 시키고도, 정작 학교 시험에서 그런 아이들을 위한 문제는 한두 문제밖에 출제하지 못하다 보니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은 ‘나는 해도 안 돼’라고 한다”며 “작은 성취감도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동기유발이 될 수 있는데, 그 학생들에게서 몇 년에 걸쳐 성취감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상위권 학생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한 학원 관계자는 “(교과서에서 배우기 전의) 선행 내용 문제 출제를 단속한다지만, 학교 시험문제를 보면 여전히 선행과 비선행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문제가 많다”며 “서열을 매기려다 보니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대입의 주요 전형요소인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대입전문학원을 운영하는 이우성 원장은 “수능과 EBS(교재) 연계율이 70%라고 하지만, 배점이 4점이나 되는 수학 마지막 문항(30번)은 연계가 안 되거나 연계 정도가 아주 낮은 문제가 나온다”며 “이 한 문제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수십 권의 문제집을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학 경쟁에서 뒤처진 학생들은 진로까지 바꾼다. 이과계열은 아예 꿈도 못 꾸고, 문과계열에서도 이른바 ‘인서울(in Seoul) 대학’(서울 4년제 대학)은 수학 성적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 서울 소재 대학 중 수학 점수를 안 보거나 비중이 낮은 예체능 계열에 자신들의 미래를 끼워 맞춘다. 고1 여학생 이경진양도 비슷한 경우다. 이양은 “원래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수의사 관련 학과가) 이과계열이라 포기했다”며 “대안으로 공무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수학이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암기력 테스트’가 된 시험
객관식과 단순 계산 문제가 너무 많은 것도 수학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다. 풀이과정보다는 결과를, 창의력보다는 하나의 정답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형을 공식처럼 달달 외워 기계적으로 풀어간다. 요즘 고교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S와 R 문제집의 경우 1권에 1400∼1600개 문제를 수백 개 유형으로 나눠 반복하도록 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인천의 한 고3 남학생은 “유형을 외워 그대로 풀어도 중간에 계산 실수만 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푼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문제풀이를 무한반복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고 말했다.
출처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4/07/20140407004689.html?OutUrl=naver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벼랑끝에 선 수학교육] 외국선 어떻게
독일의 대학입학시험인 아비투어에 응시하는 학생들은 수학 시험을 볼 때 계산기를 가져간다. 뿐만 아니라 학생이 원하면 교육부에서 허가한 수학공식집과 CAS(컴퓨터 대수 시스템)라고 하는 프로그램도 사용할 수 있다. 아비투어의 채점은 정답과 오답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과정 전체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간에 계산실수를 해서 최종 답안이 틀리더라도 점수를 인정받을 수 있고, 모범답안과 다른 방법을 동원해 문제를 풀더라도 타당한 해결 방안이면 그에 맞는 점수를 받게 된다.
수학교육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나라들은 이처럼 정답보다는 정답 도출과정을 중시하는 이해력 측정에 방점을 찍는다.
대한수학교육학회가 작성한 ‘외국의 수학교육현황 조사 연구’를 보면 독일은 학교 시험도 정답보다는 풀이과정을 중시한다. 문제는 100% 주관식으로 출제되는데, 10점짜리 문제일 경우 과정이 맞았는데 정답이 틀리면 2점이 깎이지만, 정답은 맞고 과정이 틀렸다면 8점을 잃는다.
핀란드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도 주관식 문제만 출제한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시험 위원회에서 승인한 계산기와 책자를 시험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성취도가 낮은 학생의 심리적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계산기를 이용하도록 적극 권장한다. 학교 시험은 점수를 잘게 나누지 않고 10점 만점에 1점 단위로만 평가한다.
미국의 학교 수학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쉽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과서에 수록된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40% 많다. 프랑스보다는 2배 이상 많다. 학습해야 할 단원의 수나 수준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답이 아니라 풀이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넓어 스스로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이런 나라들의 특징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수학 점수는 우리나라보다 뒤지지만 자신감이나 흥미에서는 월등히 앞선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서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현재 미국 공립고 1학년에 재학 중인 박모군은 “미국에서는 답이 틀렸다고 해서 점수를 깎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보이면 점수를 주기 때문에 미국 학생은 생각을 짜내서 문제를 풀어낸다”고 말했다.
출처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4/07/20140407004690.html?OutUrl=naver
윤지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