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는 3보다 크다?
[과학 오디세이] 2는 3보다 크다?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2가 3보다 크다니,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 문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잠시 생각을 달리해보자. 여기서의 2와 3은 ‘수’가 아닌 ‘숫자’를 가리킨다. 정확하게 말하면, “2(라는 수)가 3(이라는 수)보다 크다”고 한 것이 아니라 “2(라는 숫자의 크기)가 3(이라는 숫자의 크기)보다 크다”고 한 것이다. 생각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 글자이듯이, 숫자는 수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한 상징기호이다. 수와 숫자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 이 명제를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다.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숫자의 크기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어야 했다며 따질 수는 있겠다. 물론 전제를 달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3은 2보다 크다”고 말할 때 숫자가 아닌 수를 뜻한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앞에서 “2는 3보다 크다”는 명제를 제시할 때는 사실 의도적 숫자라는 기호의 크기에 초점을 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참으로 꾸미기 위해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니다. 그저 당신과는 다른 관점을 취했을 뿐이다.
그러면 분수에 관한 다음 명제는 어떤가. 이번에는 숫자의 크기에 대한 것이 아니니 편안하게 수 자체에만 집중하기 바란다.
“2분의 1은 3분의 1보다 작다.”
요즘 유행하는 소위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이 명제를 해석해보자. 여기서의 2분의 1은 사과 한 개를 둘로 나눈 것 중의 한 조각이고, 3분의 1은 수박 한 통을 셋으로 나눈 것 중의 한 조각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사과 2분의 1쪽과 오른손에 간신히 들고 있는 수박 3분의 1쪽의 크기를 비교하라는 것이다(무게를 비교해도 좋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과 한 개의) 2분의 1(크기 또는 무게)은 (수박 한 통의) 3분의 1(크기 또는 무게)보다 작다”고 말한 것이다. 아무리 큰 사과라 하더라도 수박의 크기나 무게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더구나 분수를 말할 때는 전체를 감안해야 하는 것이니 이 명제 또한 거짓은 아니다. 궤변을 늘어놓으며 여러분을 속이려는 의도는 정말 추호도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하도 ‘실생활 수학’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에 분수라는 수학적 개념을 일상생활에 적용했을 뿐이다.
이처럼 수학적 명제라 하더라도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 창조한 학문 중에서 비교적 논리적으로 자명하다고 하는 수학의 세계가 이럴진대, 우리의 삶에서 오고 가는 무수한 언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으로 ‘말로써 말 많은 이 세상’에 어떤 맥락도 제시되지 않은 채 속절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싶다.
약속을 깨뜨린 것이 분명한데도 약속을 파기한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꼭 지킬 것이라는 대통령과 여당의 궤변을 듣고 있노라면, 아마도 ‘약속’에 대한 그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작 민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둥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둥 걸핏하면 국민을 들먹이는 정치가들의 빈말에도 ‘국민’에 대한 그들 자신만의 관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집필한 함량 미달의 교과서가 외면받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 마치 정의를 위해 외롭게 투쟁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경우에도 ‘정의’에 대한 그들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어불성설은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에 집단적 자위권을 정당화하며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구호를 내거는 일본의 행태를 보자면 ‘평화’에 대한 그들 자신만의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며 강요하는 100여년 전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 영 씁쓸하다. 첨단의 21세기에 ‘참’을 호도하는 ‘거짓’말들이 난무하니 이런 용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국어사전을 편찬해야만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출처 :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3204928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