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 아무나 쓰는 글이었나

 

 

[과학 오디세이]논문이 아무나 쓰는 글이었나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1주일 전인 7월7일자 ‘과학 오디세이’는 “과학은 왜 믿을 만한가?”라 묻고 “여러 증거를 학문공동체가 상호비판을 통해 엄정하게 평가함으로써 얻어진 집단지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이를 학문 전체 영역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학문공동체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원활한 의사소통도 꽤 잘 이루어지는 집단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미적분에 얽힌 뉴턴의 일화가 생각난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라이프니츠도 미적분학을 완성했다. 그러나 뉴턴은 한 독일인이 자기 것을 훔쳐갔다며 공격을 가한다. 라이프니츠가 독자적으로 미적분학을 완성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왕립학회에 위원회를 설립해 표절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채택하는데, 정작 그 보고서의 숨겨진 저자는 뉴턴 자신이었다. 왕립학회라는 집단의 막강한 힘과 권위뿐만 아니라 민족감정까지 부추겨 국가 간 대립으로 논쟁을 확대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훨씬 더 정돈된 개념과 간편한 표기를 갖춘 라이프니츠 이론을 거부한 탓에, 영국의 학문 수준은 프랑스와 독일보다 100년 이상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집단지성에 대한 환상을 거두어야 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7월7일 같은 날 같은 지면에 나란히 실린 ‘서울대 교육학과의 마피아적 행태’에는 집단지성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16 참사 이후 국가개조라며 청와대가 내세운 한 노인의 모교인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들이 학회 회장직을 독점해 왔음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문제의 핵심은 학회 회장이라는 감투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논문이니까.

사실 논문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논문만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글쓰기이며 오직 논문을 통해서만 학문성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이 논문에 대하여 무지한 우리에게도 너무나 많은 의문을 던져준다. 학생이 써준 원고를 발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학회가 어떻게 계속해서 열릴 수 있는지, 그렇게 많은 학술지에 표절로 얼룩진 논문 같지 않은 논문들이 어떻게 버젓이 실릴 수 있는지, 제자의 학위 논문을 요약하여 학회지에 공동저자로 실으면서 논문지도비와 연구 실적을 함께 챙기는 것을 어떻게 관행이라 할 수 있는지 등등. 정말 논문이 읽을 만한 글인가. 의심은 점점 깊어만 간다.

그럼에도 언급한 칼럼은 오히려 의심을 확신으로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회장 자리를 나누어 가지면 표절이 근절된다는 것인가. 여러 대학에서 장관과 총리 자리를 나누어 가지면 집단지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인가. 그들만의 리그인 학회의 논문들이 왜 이런 형편없는 수준이 되었는가를 성찰하기보다는 회장 감투를 어느 세력이 독점했다고 투덜대는 것은 불량 두부를 만든 두부업자가 협회장 감투가 독점되었기 때문이라는 억지 변명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 학술지의 논문들은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여 개인의 부귀영달만을 위해 강의와 연구라는 본업과 거리가 먼 총리와 장관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전직 교수들과 ‘국민교육헌장’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을 했던 지난날의 과오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순혈주의에 의해 임명된 후배 교수들 중 몇몇이 선배들의 길을 따라 입신출세에 열중하는 작금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동시에 독재정권에 맞서 참교육을 부르짖으며 격렬한 투쟁을 하여 많은 희생을 치른 교육학도들이 배출되었다거나 그래도 양식 있는 몇몇 교수들은 묵묵히 강의와 연구에 매진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변명으로 그 학과를 변호할 의도도 전혀 없다. 언젠가는 그 학과 스스로 자신이 걸어온 역사를 분명히 밝혀야 할 때가 있으니까.

부끄럽고 창피한 우리 자신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는 지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외면하고 회피하기보다는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집단지성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보이지 않는다고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감만이라도 느끼고 싶다. 집단지성의 존재감을.

출처 :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407132128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