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오디세이]수학이 바라보는 대한민국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2-5는 얼마인가?” 단순한 뺄셈 문제이지만, 아직 음수를 배우지 않은 초등학생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그런 이상한 뺄셈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자연수 이외의 수 세계를 상상할 수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도형과 관련된 다음 진술은 참일까, 거짓일까?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도넛과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은 같은 입체이다.”
중학교 수학, 특히 기하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절대로 같은 도형이라 할 수 없다. 두 도형이 같다고 하면 모양뿐만 아니라 길이와 각도 즉 크기 까지도 같아야 한다. 삼각형의 합동조건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도넛과 머그잔이 어떻게 같은 입체란 말인가?
하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닌 토폴로지(위상수학)라는 전혀 다른 수학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이 두 입체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위상수학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다.
지하철 노선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위상수학의 한 예이다. 지하철 노선도에 나타난 역과 역 사이의 길이(거리)는 제멋대로 그려져 있어 실제 지도와 비교하면 정말 엉터리이다.
정확한 것은 각 역의 순서밖에 없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 이 노선도에 의존하게 된다. 지하철 노선도는 각 역의 순서는 그대로 두되, 역과 역 사이의 노선 길이는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잡아 늘이거나 줄이거나 비틀어서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하철 노선도와 실제 지도를 위상수학에서는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도넛과 머그잔 문제로 다시 돌아가자.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이거나 하다 보면 튜브 모양의 도넛으로 변형할 수가 있다. 그래서 다른 기하학 체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짓인 명제가 위상수학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수학적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참이 아니다. 정해진 체계 안에서만 참이라는 점에서 정치사회 체제와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공정한 선거제도가 조선시대의 왕정체제나 북한의 일인 독재체제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치사회 체제에 따라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달라야 한다는 점은 수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1+1=2’는 언제나 참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1+1=10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에 적용되는 수체계, 즉 0과 1만으로 수를 나타내는 이진법에서 1+1은 2가 아니라 10으로 표기된다. 물론 이때의 10은 십진법의 10(십)과는 다른 숫자이다. 이진법 수체계에는 2라는 숫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덧셈(+)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2+3과 1/2+1/3은 같은 덧셈으로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2+3이라는 덧셈을 하려면 자연수 2에서 그 다음 수로 하나씩 건너뛰어 세 번째 수인 5라는 답을 얻는다.
하지만 분수 1/2과 1/3을 더하는 과정에는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통분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기호(+)를 사용하지만, 자연수끼리의 덧셈과 분수끼리의 덧셈은 전혀 다른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체계가 다르면 대상도 다르니 적용되는 규칙 즉 연산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수학의 이런 특성에 대해 힐베르트라는 수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수학은 몇 가지 간단한 규칙에 따라 종이 위에 뜻 없는 기호를 배열하는 게임이다.” 그렇다. 힐베르트의 말처럼 수학은 절대적 진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다. 사전에 정한 규칙과 약속을 토대로 어떠한 결론을 찾아내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수학은 스포츠 게임에 비유할 수도 있다.
A팀과 B팀이 ‘풋볼’ 시합을 하기 위해 경기장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팀은 풋볼을 축구로, B팀은 아메리칸 풋볼(미식축구)로 생각했다면 그 경기는 어떻게 될까? A팀은 B팀이 반칙만 한다며 항의를 할 것이고, B팀은 미식축구의 규칙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할 터이니, 경기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수학이나 스포츠 게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도 규칙과 약속을 전제로 한다.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헌법은 수학의 ‘공리’나 게임의 ‘규칙’과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 기관이 동원되는 것, 이 규칙 위반을 지적한 것에 대해 ‘국민 주권의 모독’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연수의 세계에만 갇혀 있어 음수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2-5’가 틀렸다고 말하는 초등학생의 반응과 같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축구 경기장에서 미식축구의 경기 룰을 적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안하무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에서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버린 지 오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규칙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따름이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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