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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은 전체와 같다

우사84 2014. 2. 17. 11:30

[과학 오디세이] 부분은 전체와 같다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때로는 정답을 구하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질문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 지성의 거대한 흐름에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수학적 질문도 그 중 하나의 예이다.

 

자연수의 개수는 몇 개일까, 그리고 정수의 개수는?”

 

보통 사람에게는 정말 엉뚱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래의 개수나 사람들의 머리카락 개수를 세어보라. 그 헤아림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한이다. 그런데 무한인 자연수의 개수를 세어보겠다니 얼마나 무모하고 엉뚱한 시도인가. 하지만 이는 지구를 벗어나 달 표면에 내디딘 인류의 첫발자국에 못지않은 과감하고 위대한 질문이었다. 유한한 존재에 지나지 않은 인간이 감히 무한의 세계를 넘겠다고 선언하는 발칙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수는 정수에 포함되는 그 일부이니, 정수의 개수 또한 무한이다. 그렇다면 정수의 개수가 자연수 개수보다 많다고 할 수 있을까. 무한보다 많은 또 다른 무한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수의 개수는 그 자신의 부분인 자연수의 개수와 같다. , 부분이 전체와 같아지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단 세어보도록 하자. 그런데 어떻게 셀 것인가? 무한을 세어보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 , 이렇게 세어보는 것이 아니라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극장에 들어가 앉을 좌석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좌석수와 현재 관객 수를 집계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어있는 좌석이 있거나 서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면 되니까. 비어있는 좌석도 없고 서 있는 사람도 없다면 관객 수와 좌석 수가 똑같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짝짓기이다. 이를 여기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정수를 선택해도 자연수 하나와 짝을 지을 수 있고, 어떤 자연수를 택해도 정수 하나와 짝 지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각각 한 개씩 서로 짝을 짓다 보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자연수 개수와 정수의 개수는 서로 같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 부분은 전체와 같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하지만 이는 유한이 아닌 무한의 세계이기 때문에 통하는 원리이다. 사실 또 다른 무한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논의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짝짓기(일대일 대응)라는 발상은 다시 눈여겨볼 만큼 깜찍한 발상이라는 점은 기억해두자. 그것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이라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였던 것이다. “부분이 전체와 같다는 사실, 비록 그것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한이라는 다른 세계의 존재와 그곳에서 통용되는 원리임을 인정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무한의 세계에 속하지는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짝짓기와 같이 그곳을 이해하기 위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약속을 파기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주장을 궤변이라 몰아세우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싶다.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며 증인들의 진술을 다수결에 의해 판단하는 것 같은 판례도 그 나름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 수긍하고 싶다. 함량 미달의 교과서가 외면받는 것에 대한 반발을 정의를 위해 외롭게 투쟁하는 것 같은 몸짓에도 박수까지 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눈 감아 주고 싶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무한의 세계가 존재하듯이, 지금 이 땅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되니까. 그리고 무한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발칙한 질문을 던지듯이, 그들만의 상식과 논리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기꺼이 좋은 질문을 준비하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들어갈 수 있는 짝짓기와 같은 마땅한 열쇠가 없다는 것이다.

    

출처(원문) :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