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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국정 교과서, 지적 망국의 지름길

우사84 2015. 1. 19. 14:2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122124265&code=990100&s_code=ao097[과학 오디세이] 국정 교과서, 지적 망국의 지름길


[과학 오디세이] 국정 교과서, 지적 망국의 지름길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다음 중 옳은 표현은

(1) 4개는 3개보다 1 (크고/많고), 2개는 3개보다 1 (작다/적다). 

(2) 43보다 1 (크고/많고), 23보다 1 (작다/적다).

정답은 다음과 같다

(1) 4()개는 3()개보다 1(하나) 많고, 2()개는 3()개보다 1(하나) 적다

(2) 4()3()보다 1() 크고, 2()3()보다 1() 작다.

 

어떤 양을 나타낼 때에는 많다/적다라고 표현하고 우리말로 읽지만, 숫자를 나타낼 때에는 크다/작다라고 표현하고 한자어 ’ ‘’ ‘으로 읽어야 한다. 엊그제가 한글날이라 수학적으로 올바른 한글 표현을 억지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우리네 수학교육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자 교과서의 수많은 오류 중 한 예를 들었을 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교과서 첫 단원에 대한 교사용 지도서에는 “3보다 하나 더 많은 수는 4이고, 하나 더 적은 수는 2이다라고 되어 있다. 양을 뜻하는 많다/적다라는 표현을 숫자의 크기를 비교하는 데 잘못 적용한 것이다. 수학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게 숫자와 수량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의 빌미를 교과서가 제공한 셈이다. 사실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이런 명백한 오류뿐만 아니라 엉터리 문제와 적절치 못한 내용이 모든 학년 모든 단원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순전히 교과서 집필자들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의 자격과 역량이 수준 이하라고 비난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누구보다도 교과서의 중요성을 잘 아는 그들이기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량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국정교과서라는 제도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시스템상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 ‘국정이라는 단어의 권위와 이에 개입된 이권의 무게가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독점의 폐해와 결합해 자유롭고 비판적인 집필 분위기를 짓누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개연성은 교과서와 함께 제공되는 익힘책에 대한 다음 안내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익힘책은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가정에서 자학자습용 워크북으로 활용할 것이라 못 박은 대목이 그것이다. 가정에서도 수학을 가르치도록 일방적으로지시하는 관료주의의 오만과 독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의식 있는 교사들은 익힘책의 문제들도 현장에서 해결하는 수고를 감당한다. 난이도의 일관성이나 문제의 적절성에 대한 고민은커녕 그냥 마구잡이로 모아놓은 문제들을 학부모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중의 문제집보다 못한 교과서 제작은 오로지 국정이라는 독점 체제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자유경쟁 체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저자 다카시는 전제적이고 획일적인 일본 문부성을 교육사령부라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일본을 망국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군부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일본인들 대부분은 문부성의 이런 완전관리형 교육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특이한 교육시스템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부는 일본의 문부성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시험에 출제되는 문제가 여기 있다고 유혹하며, 한창 많은 책을 읽고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할 우리아이들을 맹목적으로 TV 앞으로 내모는 것이야말로 지적 망국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아니던가. 이런 것을 정책이라고 내세우는 이들에게 교과서란 국가에서 독점하여 공급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는(동의하기 어렵지만) 수학 과목마저 이럴진대, 다른 과목의 교과서 국정화가 초래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초등수학 교과서와 관련된 모든 사태가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이라는 구호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OECD 회원국들은커녕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국정인 수학 교과서의 사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만은 예외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따라 하는 것이 선진화라는 얘기인가?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