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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독선

우사84 2014. 4. 29. 23:12

 

 

[과학 오디세이]피타고라스의 독선                                                               박영훈 | 수학자

 

그리스 에게해의 사모스 섬. 코발트 색깔의 하늘과 푸른 빛 지중해 바다 위에 떠 있는 아름다운 여러 섬 중의 하나로 이솝과 피타고라스가 태어난 곳이다. 2500년 전인 BC 580년경 보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이집트 등 이웃나라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귀향하여 당시 그 섬을 통치하던 폴리크라테스의 아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위정자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감행하는 것이 주요 통치 행위 중의 하나인가보다. 이 작은 섬에 길이가 1350미터에 달하는 터널을 뚫어 헤로도토스의 <역사>3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기록되어 전해내려 오고 있으니 말이다. 붉은색 전함을 이끌고 이오니아 해안에 접근하는 모든 배를 약탈하였으니 해적이나 다름없는 사모스의 왕이 어떤 정치를 펼쳤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 하다.마흔을 넘긴 피타고라스도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 위치한 크로톤이라는 도시국가에 정착한다. 소식을 들은 크로톤의 원로들은 젊은이들을 위한 강연을 부탁했고,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탁월한 말솜씨 덕택인지 그의 주위에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렇게 사모스 섬이 아닌 이탈리아의 크로톤에서 자리잡았다. 사실 피타고라스학파라 부르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학술 단체나 학교와 같은 모임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집단 공동체를 구성한 이들은 사이비 종교집단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교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제사 지낼 때를 제외하고는 고기나 콩을 먹어서는 안 된다. 하얀 수탉을 만지지 마라. 쇠붙이로 불을 휘젓지 마라. 불빛 옆에서 거울을 보지 마라등등. 이러한 신비주의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짐작되는데, 인간의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른 몸으로 환생한다는 일종의 윤회설도 이들이 믿고 있던 교리 중의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 희극 중에 개를 때리는 사람을 꾸짖는 피타고라스를 묘사하며 이들의 윤회설을 조롱하는 장면이 있다.

 

그만 때리게나. 내 친구의 영혼이 그 개 안에 들어있단 말일세.”

 

그것을 어떻게 안단 말이오?”

 

저 비명이 바로 내 친구의 목소리야.”

 

셰익스피어도 <십이야>에서 피타고라스의 윤회설을 인용할 정도이니, 윤회설은 동양의 것만은 아닌가 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교리에는 이렇게 황당한 신비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합리주의, 즉 수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며 자연을 설명하는 근본 원리라 보았고 조화로운 화음을 내는 현의 길이는 모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류 최초로 자연과 물리의 세계를 수학의 눈으로 해석해 기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제곱수, 삼각수, 완전수 등과 같이 그들이 발견한 수들 사이의 관계는 오늘날 정수론을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수에 대한 집착은 도가 지나쳐 미신적인 주술의 단계까지 갔다. 짝수는 여성, 홀수는 남성이라 했고, 더 나아가 짝수는 악, 홀수는 선을 상징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것만을 선호했던 그들에게 21, 42, 84, 이렇게 한없이 계속해서 이등분될 수 있는 짝수의 성질에 공포감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추종자들은 피타고라스를 신의 아들, 특히 아폴론 신의 아들이라 믿었고 그의 어머니는 파르테니아스라 불렀다. 같은 시각에 두 곳에서 나타났다거나, 물 위를 걷기도 했다는 소문은 피타고라스를 신격화하는 작업의 일부였다.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수로 환원해 해석하려는 합리주의를 토대로 일종의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은 비밀 결사조직의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독선은 파국을 맞는 법, 이들의 폐쇄적인 아집과 독선은 결국 동료 한 사람을 집단 살인하는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 자신의 이름을 딴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르면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인 2와 같은 무리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무리수라는 새로운 수의 존재에 무척이나 당혹감을 가졌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질서를 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그들의 수 세계는 정수나 분수에만 국한된 것으로, 무리수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무리수를 비로 나타낼 수 없다는 뜻의 알로곤이라 불렀는데 여기에는 말할 수 없음이라는 또 다른 뜻이 들어있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이나 철학을 수정하기보다는 이를 회피하는 꼼수를 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 사실을 누설하는 것을 금하는 독단의 길로 들어섰는데, 제자 중 한 사람인 히파수스가 이를 누설하자 급기야 그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이다.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랑 때문에, 종교 때문에 아니면 돈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숫자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된 인류 역사상 유일한 희생자일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독선과 아집은 한 신도의 집단 살인이라는 비극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 후 무리수의 재발견은 무려 2000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으니 그는 인류의 지성을 캄캄한 어둠의 세계에 가두어 놓은 원흉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42021175&code=990100